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쿠가와 요시노부(드라마) (문단 편집) == 기타 == *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연기한 주연 모토키 마사히로는 1991년 태평기 출연 이후 7년만에 대하드라마 주연이 됐다. 모토키 마사히로는 당시 나이가 30대였지만 10대 시절의 요시노부도 연기했는데 워낙 [[동안]]이라 위화감이 없다. * 각본가 타무카이 세이켄은 '[[다케다 신겐(드라마)|다케다 신겐]]', '노부나가 KING OF ZIPANGU'에 이어 세 번째 대하드라마 각본을 맡았다.[* NHK 대하드라마 최다 집필 각본가는 총 4번의 각본을 맡은 나케지마 다케히로(中島丈博)다.] * 2014년 가을에 완전판의 DVD가 발매됐으며, 2017년에는 총집편의 DVD가 발매됐다.[* 총집편의 수록 내용은 총 4부로 구성됐다. 1부 [[쿠로후네 사건]], 2부 [[안세이 대옥]], 3부 [[금문의 변]], 4부 [[대정봉환]].] NHK 온디멘드 서비스의 [[VOD]]로도 시청이 가능하다. * 드라마 포스터의 촬영은 바다가 아니라 [[요코하마]] 시내에 있던 실내 수영장에서 했다.[[https://www2.nhk.or.jp/archives/search/special/detail/?d=taiga038|#]]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g_2c4214b27acb37bc55e8a64078c578452610437.jpg|width=100%]]}}} || || {{{-1 {{{#C4A027 ▲ '''촬영 현장에서 손바닥에 아들의 이름을 적어 공개한 모토키 마사히로'''}}}}}} || 모토키 마사히로는 촬영 전에 장남이 태어나 아들의 이름 공개를 제작 발표 회견장에서 하기도 했다.[* 장남은 현재 'UTA'라는 예명으로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https://www2.nhk.or.jp/archives/jinbutsu/detail.cgi?das_id=D0009070181_00000|#]] * 모토키 마사히로의 커리어에 굉장히 뜻깊은 작품인듯 한데, 모토키는 이후의 [[https://www2.nhk.or.jp/archives/jinbutsu/detail.cgi?das_id=D0009070181_00000|인터뷰]]에서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을 끝냈을 때, 그야말로 크랭크인과 거의 동시에 태어난 아들이 1년이 지나고, 몇 배로 커진 모습을 보았을 때의 생각과 같은, 그 정도의 보배라고 할까 재산이 자신 속에서 자라났구나, 부풀어 올랐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대하의 경험이 없었다면 오늘날 [[쇼와 천황]]의 역할([[일본 패망 하루전]])도 해낼 수 없었을 것이고, 물론 『[[언덕 위의 구름(드라마)|언덕 위의 구름]]』의 아키야마 마사유키를 연기하는 중책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미토 번|미토 도쿠가와 가문]]의 묘소가 있는 서룡산에서 요시노부가 몰래 에도를 빠져나가 아버지 나리아키의 묘소를 찾는 장면이 촬영됐다. 서룡산은 미토 도쿠가와 가문 초대 요리후사부터 현재까지 역대 당주의 묘소가 있다. 원래대로라면 TV 카메라가 들어갈 수 없지만 요시노부가 나리아키의 묘소를 참배한다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허가가 났다.[[https://www2.nhk.or.jp/archives/search/special/detail/?d=taiga038|#]] * 제작진들이 철저히 [[고증]]을 한 드라마로 알려져 있는데, 고증에 대해 고집을 볼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드라마에서는 쇼군 후견직이 된 요시노부가 바둑을 두는 장면이 여러 번 그려졌다. 이것은 바둑 지도를 맡는 [[이시다 요시오]] 9단과 문하생 타카하시 히데오가, 에도 시대의 바둑 두는 방법에 가까운 형태의 정석에 따라서 만들어 낸 국면이다.[[https://www2.nhk.or.jp/archives/search/special/detail/?d=taiga038|#]] * 제작진의 고증에 대한 고집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장면은 요시노부와 영국공사 파크스의 만찬 장면이다. 제공된 것은 [[프랑스 요리]]로 드라마에서는 메인디쉬와 디저트가 등장했지만 이것들은 실제로 오사카성에서 열린 연석의 메뉴를 기록한 '케이오 삼년의 불란서요리 요리식단서'에서 재현한 것이었다.[[https://www2.nhk.or.jp/archives/search/special/detail/?d=taiga038|#]] * 도쿠가와 나리아키를 연기한 [[스가와라 분타]]는, 나리아키의 의상을 '검소한 생활을 다소 강조하고 싶어 처음부터 끝까지 쪽염색이나 누비옷의 무명만으로 입기로 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무라이는 질실강건해야 한다는 나리아키의 사상이나 자세를 겉모습에서도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https://www2.nhk.or.jp/archives/search/special/detail/?d=taiga038|#]] * 각본가 타무카이 세이켄이 집필한 드라마의 특징은 대사가 상당히 많다는 것인데, [[이이 나오스케]]를 연기한 스기 료타로는 원로로서의 소신을 표명하는 장면이 첫 등장이었는데 이때의 대사가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그는 "연예생활 33년, TV, 영화 1400편을 찍어왔지만 이렇게 대사가 많은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리듬이 바뀌면 늙은이답지 않다. 안정된 속도와 키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라고 말했다.[[https://www2.nhk.or.jp/archives/search/special/detail/?d=taiga038|#]] * NHK 회장인 에비자와 카츠지의 초청으로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손녀이자 아리스가와 타루히토 친왕의 외손녀이기도 한 다카마츠노미야 [[키쿠코 비]]가 촬영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으며, 모토키 마사히로에게 질문 공세를 펼쳤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yAHjdSVgAIdu26.jpg|width=100%]]}}} || || {{{-1 {{{#C4A027 ▲ '''도쿠가와 요시토모와 모토키 마사히로'''}}}}}} ||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증손자이자 도쿠가와 요시노부 가문 제4대 당주 도쿠가와 요시토모(徳川慶朝)[* 아버지는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손자 도쿠가와 요시미츠다. 어머니는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의 손녀인 도쿠가와 카즈코다. 사진가로 활동했다. 자식이 세 명 있었지만, 전처와 이혼 후 양육권을 모두 전처가 가져갔기 때문에 자식들은 도쿠가와 성이 아니다. 이혼 후 입양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며, 2017년 요시토모가 사망했기 때문에 도쿠가와 요시노부 가문은 단절됐다. 요시노부의 직계 자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역시 촬영장에 방문했다. 증조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어 매우 기뻐했다는 일화가 있다.[[https://twitter.com/yamagishimadam/status/1378109804615364609/photo/1|#]] * 국내 대하드라마를 많이 집필한 유명 각본가 [[정하연]]이 이 작품을 시청하고, 평을 남기기도 했다.[[https://blog.naver.com/sukusuku1234/221336264694|#]] * 드라마의 해설은 렌 역을 맡은 오하라 레이코가 담당했다. 해설의 렌이 자주 사용하는 말인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은 당시 유행어로 떠오르기도 했다. 참고로 대하드라마에서 작중의 등장 인물이 해설을 겸임하는 방식을 사용한 것은, 이 작품의 각본가 타무카이 세이켄이 '[[다케다 신겐(드라마)|다케다 신겐]]'에서 처음 시도한 방식이다.[* 다케다 신겐의 해설은 이 작품의 요시코 역을 맡은 [[와카오 아야코]]가 해설을 담당했다. 타무카이 세이켄의 두 번째 대하드라마인 '노부나가 KING OF ZIPANGU'에서도 이 방식이 시도됐다. 대하드라마 최초로 외국인이 해설을 담당했다.] * 이 드라마의 원작인 [[시바 료타로]]의 소설 '[[https://www.amazon.co.jp/%E6%96%B0%E8%A3%85%E7%89%88-%E6%9C%80%E5%BE%8C%E3%81%AE%E5%B0%86%E8%BB%8D-%E5%BE%B3%E5%B7%9D%E6%85%B6%E5%96%9C-%E6%96%87%E6%98%A5%E6%96%87%E5%BA%AB-%E9%81%BC%E5%A4%AA%E9%83%8E/dp/4167105659|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1967년 단행본이 발매되어 누계 발행 부수는 240만 3천부가 넘는 [[베스트셀러]]로 2021년엔 5회에 걸쳐 중판된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시바 료타로는 그의 최고 베스트셀러인 '료마가 간다'[* 이른바 [[사카모토 료마]] 붐을 만들어낸 역사 소설. "사카모토 료마 = 막부 말기의 대표적인 개혁가" 이미지를 만든 소설이다.]를 쓴 후에도, 계속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시바는 이 소설의 첫문장은 "사람의 생애는 때때로 소설을 닮았다. 주제가 있다."라고 썼다. 세상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산 것이 요시노부의 주제라고 해석한 것이다.[[https://www.iza.ne.jp/article/20210301-X26AC3JQCNLBBKQHP7OMVGUKMM/|#]] 또한 시바 료타로는 요시노부를 파악할 수 없는 존재로 해석했다. 뒷글에서 시바 료타로는 "도쿠가와 요시노부라고 하는 나의 이 대상에는 소재 그 자체가 이미 주정도가 높은, 사람을 명정[*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술에 몹시 취한다는 뜻.]시키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적고 있다. 이 소설에서 시바는 요시노부의 다재다능함을 나타내는 사적을 나타내면서, 기대를 걸고 있던 주위 인물들이 요시노부에게 식어 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예를 들면 소설에서 후쿠이 번주의 마츠다이라 슌가쿠가 이렇게 말한다. "결국 저 사람은 백 가지 재주가 있지만, 단 한 가지 담력도 없다. 담력이 없으면 지모도 재기도 결국은 연극이 될 뿐이다." 또한 시바는 "항상 그 (연극의) 효과는 극적이었다. 이 점에서도 요시노부는 천부적인 [[배우]]였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https://www.sankei.com/article/20210703-46SKFMFOARJ7RF5ZMZ3QEBVUIM/|#]] 또한 시바는 "요시노부는 고독했다. 예로부터 이처럼 유능하고 그토록 다재다능하고 고독한 쇼군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http://hontasu.blog49.fc2.com/blog-entry-4671.html?sp|#]] * [[사카모토 료마]]빠인 시바 료타로의 소설이 원작인 드라마이면서 [[대정봉환]]의 중요 인물로 여겨지는 사카모토 료마는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애초에 료마는 요시노부와의 접점이 없다. 대정봉환의 이론은 가쓰 가이슈나 사쿠마 쇼잔, 혹은 요코이 쇼난으로부터 배운 것을 사카모토 료마가 정리했을 뿐이다. 료마가 단독으로 만든것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등장할 필요는 없다.] * 시대 고증은 에도 시대 전문가인 역사학자 오이시 신자부로(大石慎三郎) [[가쿠슈인대학]] 명예 교수가 담당했다.[* [[8대 쇼군 요시무네]],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의 고증도 담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